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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훈표 (역사실학회)
저널정보
연세사학연구회 학림 학림 제44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59 - 212 (5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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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고려 성종대 실시되었던 사면과 그에 수반되었던 은전 등에 관하여 분석하였다. 제1대 군주였던 태조대부터 제6대였던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총 16회의 사면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성종대에만 11회의 사면이 단행되었다. 그 이전에는 겨우 5회만 실시되었다. 성종을 제외한 다른 임금들은 재임 기간 중 평균적으로 단지 1회만 단행한 셈이다. 더불어 그에 수반되었던 은전도 매우 풍성한 편이다. 이렇게 전임 국왕들보다 자주 사면을 실시했던 이유를 밝히는 것이 본 논문의 기본 목표이다. 사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속하는 것이 동기다. 무슨 이유로 사면을 실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성종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즉 전임 임금들이 내세웠던 동기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우들을 추가시켰다. 새로 추가되었던 것들 중에는 중국의 송, 거란으로부터 冊封을 받았거나 송으로부터 『藏經』이 전달되었던 것 등이 포함되었다. 이런 이유로 사면을 실시한 것은 성종이 처음이며 유일했다. 그 외에 책봉을 받은 뒤 지방에 행차하며 사면과 은전의 베풂을 선포하기도 했다. 송으로부터 받았을 때에는 西京에 행차해서 사면을 실시하였다. 거란에게 받았을 때에는 東京으로 행차하면서 사면을 단행하였다. 이 역시 성종이 최초이며, 더구나 동경 행차는 유일했다. 성종이 전임 국왕들과 달리 사면을 자주 실시했던 것은 특별한 정치적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민심을 추스리며 스스로 추진했던 외교 및 국내 정책들의 지지도를 크게 높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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