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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엄기표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목간학회 목간과문자 목간과문자 제18호
발행연도
2017.6
수록면
37 - 65 (29page)
DOI
10.35302/wdis.2017.06.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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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碑는 자연에서 채석한 돌을 가공하여 역사적 사실이나 기념될 만한 사건 등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거나 현창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이다. 石碑는 명문이 새겨지고 장식적인 기교가 반영되었기 때문에 文獻史와 美術史 등 제 분야에서 일찍부터 주목되어 왔다. 지금까지 한국 고대의 석비와 관련된 연구는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양식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삼국시대 석비에 대해서는 문헌사적인 연구는 많은 편이지만 미술사적인 접근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석비는 삼국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건립되면서 발전의 과정을 거듭했는데, 삼국시대는 석비의 건립이 장식적인 기교나 미적인 측면보다 비신에 글자를 새기기 위한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이 중시되었다. 현재 新羅는 高句麗나 百濟에 비하여 비교적 많은 양의 석비가 전해지고 있으며, 초기에는 석비의 건립이 다소 늦었지만 6세기 초반경부터 본격화되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와 같이 新羅는 처음에는 자연에서 면이 고른 原石을 구하여 거의 그대로 활용하여 글자를 새기다가 6세기 대에 들어와서는 채석한 원석을 점차 치석 가공하여 원하는 형태로 만든 다음 글자를 새김으로써 양식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발전을 통하여 통일신라 초기에 龜趺와 螭首가 마련된 석비가 건립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삼국시대에 귀부와 이수가 마련된 석비가 충분히 출현할 수도 있었는데, 건립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목차

국문초록
I. 서론
II. 石碑의 기원 문제와 高句麗 百濟의 석비
III. 新羅 5~6世紀 石碑의 건립과 전개
IV. 新羅 5~6世紀 石碑의 특징과 미술사적 의의
V.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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