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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용진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도시사학회 도시연구 도시연구 : 역사·사회·문화 제15호
발행연도
2016.4
수록면
25 - 53 (29page)
DOI
10.22345/kjuh.2016.4.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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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19세기 파리는 파괴와 창조라는 특징을 지니는 근대성의 도시였다. 하지만 이 시기 파리는 동시에 과거의 역사기념물들을 보존하고 복원하려는 역사화의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에 따라 18세기 말까지 부정적인 대상으로 인식되어 오던 ‘옛 파리’는 19세기 초에 들어와 낭만주의의 물결과 더불어 미학적으로 재발견된다. 이러한 문화사조는 새로운 국민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7월 왕정의 정책으로 이어졌다. ‘시민 왕’ 루이-필리프와 내무부장관 기조는 통합적인 ‘국민’의 이름으로 7월 왕정을 과거 왕조와 프랑스혁명 모두의 종합적 계승자로 내세우고자 했고 이는 곧 국민 공통의 기억의 모범인 역사기념물들의 보존과 복원정책으로 이어졌다. 비올레르뒤크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기념물 보존 및 복원 사업은 1848혁명과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 제2제정의 등장이라는 파란만장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졌다. 물론 이러한 작업들은 다양한 현실적⋅행정적 문제들과, 특히 제2제정 당시에 시행된 오스만 남작의 도시계획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제3공화정이 수립되고 민주주의가 확립되어 가면서 비올레르뒤크가 이끄는 역사기념물 보존 및 복원작업은 새로운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 시기의 소장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중세와 국민적 모범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개념과 정책을 비판하면서 고대에서 근대까지 시기를 확장하고 민중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유적들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하였다. 이렇게 해서 역사기념물 정책은 국민적 모범 확립에서 시민적 역사교육으로 변화해 갔다. 19세기 파리가 보여준 이상의 과정은 두 가지 의미를 던져준다. 한편으로 그것은 근대화 반대하는 역사화가 바로 근대화의 산물이라는 이중적 관계를,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기념물 정책을 둘러싼 국민 정체성 확립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낭만주의 운동과 ‘옛 파리(Vieux Paris)’
Ⅲ. 중세 풍 심미주의에 따른 역사기념물 보존
Ⅳ. 새로운 기준들의 등장
Ⅴ. 나가며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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