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비오 11세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높이 기렸듯이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서, 신학자이자 영성가요 목자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끊임없이 찾던 참된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온전히 계시하신 하느님임을 알고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어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충실히 전하고자 진력했던 그는 스스로 공의회들에 참석하여 그리스도교 진리를 온전히 보존하고 충실히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그는 사후에도 시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공의회들을 통해 직·간접으로 교회의 향방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공의회가 하느님의 백성(교회)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시대적 소명을 식별하고 구현해 가는 역동적인 자기표현이라고 볼 때 역대 공의회들이 아우구스티누스를 수용한 다양한 방식과 노력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초기부터 하느님(예수 그리스도), 죄와 구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많은 유설들(도나투스주의, 아리우스주의, 펠라기우스주의 등)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누스를 원용하여 올바른 이해를 제시하고자 했다(히포, 카르타고, 오랑주, 에패소, 칼케돈, 제3차 콘스탄티노플, 제2차 니케아, 제1차-제4차 라테란 공의회 등).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상당히 일방적으로 이해했던 프로테스탄트 측과 근대의 사상적 혼란기를 겪던 세상을 향해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을 근거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다시금 제시하고자 하였다(트렌토 공의회,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격변하는 현대 세계 안에서 당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징표를 발견한 가톨릭교회가 자신에 대한 물음을 새롭게 던지며 시작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자신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파견된 존재임을 깨닫고 모든 인류에게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자 하였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런 과정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은 공의회의 여러 문헌들에 반영되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기를 초월하여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증거한 신실한 증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고 시대에 맞게 그 의미를 구현하고자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