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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44
발행연도
2006.12
수록면
93 - 12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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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에 등장하여 동방으로 세력을 뻗쳐온 이슬람인과 그 문물은 신라인에게는 새롭고 이질적인 문명과의 만남이었다. 동북아지역 밖에서 생산된 異域의 물자는 신라에서 6세기 말부터 보이는데, 주로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 중국과의 외교 교섭이나 국가교역, 민간상인을 통한 교역 할 것 없이 唐 정부와 唐 상인을 매개로 한 경우가 많았고, 蕃商들과의 직접 거래도 주로 중국 땅에서 이뤄졌다.
8세기 이후 이들이 신라를 찾은 것은 8세기 후반과 9세기 후반기 정도이고 국제 교역상인과 무용수, 악사 위주였다. 우리 문헌은 물론 아라비아측 자료에도 관련 기록이 중국에 비해 현격하게 적은 것은 국가 간의 공식적인 사절 교환이나 지속적인 문화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아라비아ㆍ소그드ㆍ페르시아 상인들도 새로운 販路를 개척하기 위해서보다는 당의 정세와 교역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동적으로 신라에 진출한 면이 강하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정착하기도 했지만 당에서처럼 활동 범위가 넓지는 않았다.
신라는 粟特樂과 景敎가 유입되고 이국 산물이 유행했지만, 문화적 존숭의 대상으로 아라비아나 페르시아, 소그드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신라인들의 인식은 그들의 형용이 ‘可駭’하고 의복이 ‘詭異’한 문화적 충격의 느낌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또 이들을 활용하여 당 혹은 일본과 교섭해야할 상황도 아니었다.
다만 이들이 취급한 희귀한 상품 특히 약재와 향료, 공예품은 왕실과 골품 귀족들에게도 이제는 불가결한 물품이 되었으므로 그 원활한 공급을 위한 일부 상인과 藝人들의 정착이 이뤄졌다. 이들에 대한 기억이 9세기 중엽의 이슬람 문헌에 남게 되었고 그 흐름은 아라비아인이 본격 진출하는 9세기 후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10세기 들어 후삼국의 혼란 속에서 다시 무슬림의 내왕은 두절되었다가 고려 현종 15년(1024)에야 재개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이슬람인의 내왕 기록
Ⅲ. 페르시아인ㆍ소그드인의 진출
Ⅳ. 아라비아인의 到來와 처용설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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